‘살아있는 데이터’ 실시간 수집하는 공간

지난 3일 현대자동차 강남대로 사옥에 낯선 시설이 들어섰습니다. 현대차의 UX 연구 과정을 소개하는 체험형 공간 ‘UX 스튜디오 서울’입니다. ‘국내 최대 모빌리티 기업의 UX라니?’ 싶어 얼른 다녀왔는데요. 

육중한 로봇팔과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 플랫폼이 전시돼 있고, 내년 공개될 차세대 AI 비서 ‘글레오 AI’와 가상 주행 시뮬레이션 등을 체험할 수 있는 이곳은 언뜻 보면 현대차의 신기술을 홍보하는 공간 같지만요. 실은 더 중요한 목적을 갖고 있습니다. 바로 사용자 ‘목소리’를 실시간으로 수집하기 위한 UX 리서치 연구시설이라는 점이죠. 

현대차는 보도자료를 통해 이번 스튜디오를 “일반 고객이 차량 UX 개발 과정에 참여하고 피드백을 제공하는 연구 플랫폼”이라 소개하며, “고객의 다양한 행동 데이터를 향후 차량 개발에 반영할 것”이라고 했습니다. 

UX 스튜디오 서울처럼 사용자 의견을 상시 수집하는 오프라인 공간은 이번이 완성차 업계 최초입니다. 그렇다면 현대차는 왜 지금 이런 시설을 만든 걸까요? UX 스튜디오 서울에 직접 방문해 자세한 내용을 살펴봤고요. 현직 UX 리서처들의 생각도 정리했습니다.

방문객 행동 데이터 수집, 차량 개발에 활용

현대차 강남대로 사옥 1, 2층에 자리잡은 UX 스튜디오 서울은 크게 두 가지 구역으로 구성됩니다. UX 전시 콘텐츠를 체험하고 리서치에 참여할 수 있는 1층 ‘오픈랩’과 몰입형 UX 연구 공간인 2층 ‘어드밴스드 리서치 랩’입니다. 

앞서 UX 스튜디오 서울이 사용자 목소리를 듣기 위해 설계된 공간이라고 밝혔는데요. 대부분의 수집 활동은 1층 UX 테스트 존과 SDV 존에서 이뤄지고 있습니다. 

1층 오픈랩에서는 현대차의 다양한 신기술을 체험할 수 있습니다. F1 훈련 장비처럼 생긴 주행 시뮬레이터에 탑승해 가상 운전 상황에서 다양한 기기를 조작해보거나요. 나무로 제작한 미래 차량 모형에 앉아 좌석 구성이나 이동 콘솔을 경험할 수 있습니다. 또 내년 공개될 차세대 음성 인식 서비스 ‘글레오 AI(Gleo AI)’에 이런저런 명령을 내려볼 수도 있죠.

현대차 관계자에 따르면, 이 과정에서 발생하는 사용자의 행동 데이터는 곧장 서버로 전달돼 차량 개발에 활용됩니다. 예컨대 가상 주행 시뮬레이터에서 아이트래커를 통해 수집한 체험자의 시선 데이터는 “기능 동작과 시선 분산에 따른 사용성 지표를 도출하고 테스트 결과를 검증”하는 데 쓰입니다. 글레오 AI로 수집한 음성 명령도 마찬가지고요.

사용성 테스트 외의 상시 설문도 활발히 진행 중입니다. 특히 안쪽 공간에는 현대차의 사용자 경험 역사를 기록한 UX 아카이브 존이 마련돼 있습니다. 지금은 인체의 다섯 가지 감각을 테마로 한 기획전을 진행 중으로, 방문 당시에는 클러스터나 센터페시아 같은 시각 정보 전달 장치의 변천사를 소개하고 있었는데요. 구경하고 나온 방문객에게 “가장 자주 확인하는 시각 정보는 무엇인가요?”와 같은 피드백을 받고 있었으며 이런 설문 패널이 1, 2층 여기저기 존재합니다.

이처럼 UX 스튜디오 서울은 ‘체험’과 ‘설문’을 두 축으로, 사용자 접점의 최전선 역할을 하고 있었습니다. 현장에서 만난 현대차 관계자는 UX 스튜디오 서울에는 크게 두 가지 목적이 있다고 설명합니다.

UX 스튜디오 서울에 기대하는 바는 크게 두 가지예요. 하나는 홍보, 즉 고객이 ‘현대차 UX’에 관심을 갖게 하는 것이고요. 또 하나는 일반 고객으로부터 얻은 다양한 리서치 결과를 차량 UX에 반영하는 것입니다. 

구체적으로 1층에서는 체험이나 QR 접속 등을 통해 신규 기능의 피드백 또는 새로운 인사이트를 가볍게 얻고요. 2층에선 선별 모집한 고객을 대상으로 인터뷰나 실물 체험 등의 심층 리서치를 진행 중입니다. 두 공간에서 얻은 데이터는 모두 하나의 데이터 서버에서 종합 분석돼 실제 연구에 반영될 예정이에요.

UX 스튜디오 서울 기획을 담당한 현대차 관계자 A씨

‘탈 것’에서 ‘전자제품’으로… 차량 UX 중요해져

UX 스튜디오는 원래 서초구에 있었습니다. 당시에는 현대차 UX 연구원들만 쓰는 업무 공간이었는데요. 지금처럼 시민 모두의 의견을 수집하는 공간으로 개편되면서 접근성이 높은 강남대로 사옥으로 이전했습니다. 

그럼 현대차는 왜 이 시점에 막대한 비용을 투자해 이런 시설을 만든 걸까요? 그 이유는 모빌리티 산업의 패러다임 변화 때문으로 분석됩니다. 최근 몇 년 새 자동차의 정체성은 ‘탈 것’에서 ‘전자제품’으로 바뀌었습니다. 완성차 기업 사이에선 하드웨어보다 소프트웨어 기술이 더 큰 경쟁력으로 떠올랐고, 현대차는 연내 전 차종을 ‘소프트웨어 중심 자동차(SDV)’로 전환한다는 계획입니다. 

이러한 변화를 차량 탑승자 입장에서 보면요. 운전하는 시간이 줄고 그밖의 활동, 예컨대 휴식이나 업무, 여가 시간이 길어진다는 뜻일 텐데요. 이러한 변화의 길목에서 국내 최대 모빌리티 기업이 사용자 경험에 집중하는 것은 어찌보면 당연한 움직임일지도 모르겠습니다. 

현대차 관계자는 “운전자뿐 아니라 차를 타는 모두의 엉뚱한 상상력을 듣고자 한다”며 “그간 일반인이 연구에 참여할 수 있는 공간이 도심에 없었던 만큼 다양한 VoC(고객 목소리)를 확보할 수 있을 것으로 기대한다”고 전했는데요. 

시민 전반으로부터 방대한 날 것의 의견을 수집해야 한다는 점에서 UX 스튜디오를 유동인구가 많은 강남으로 옮긴 것은 타당한 전략으로 풀이됩니다.

이게 잘 되려면 무엇보다 사람을 많이 끌어모아야겠죠. 여기서도 흥미로운 전략이 눈에 띕니다. 1층 통유리로 보이는 육중한 ‘로봇팔’이 모객 역할을 하고 있거든요. 차량 제조에 쓰이는 이 로봇팔, 사실 사용자 경험과는 무관한 장비이지만요. 길거리를 지나가는 시민들의 시선을 사로잡는 일종의 옥외광고 역할을 톡톡히 수행하고 있었습니다. 

현대차는 앞으로 더 적극적인 홍보 활동에 나설 계획입니다. 현재는 유튜브 광고와 웹사이트 및 네이버 지도 배너 등 온라인 광고를 진행 중인데요. 현대차 관계자는 “스튜디오를 담당하는 UX 부서뿐 아니라 전사 차원에서도 다양한 홍보 방안을 선보일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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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살아있는 데이터’ 수집하는 이상적인 공간 

UX 스튜디오 서울에 방문한 날, 현장에는 혼자 온 사람부터 연인, 어린 자녀를 둔 부모까지 다양한 시민들이 있었습니다. 방문객들은 대체로 신기하다는 반응이었는데요. 현직 UX 리서처들에게는 더 큰 인상을 남긴 것 같습니다. 

디지털 인사이트와 만난 한 대기업 소속 UX 리서처 B씨는 이번 스튜디오를 두고 “UX 연구자 입장에선 이상적인 공간”으로 평가하며, 개관 소식을 접하고 “부러운 마음이 먼저 들었다”고 전했습니다. 설명을 들어보시죠. 

사용자로부터 얻는 데이터는 실제 사용 맥락과 얼마나 가까운 상황에서 수집되느냐에 따라 그 질이 결정됩니다. 그런 면에서 UX 스튜디오 서울은 ‘살아있는 데이터’를 수집할 수 있는 이상적인 공간이에요. 

방문객은 조사에 참여한다는 의식 없이 자연스럽게 신기능을 체험하고요. 그 과정에서 얻은 데이터는 설문 조사 같은 것과는 비교할 수 없을 만큼 높은 가치를 지니게 됩니다. UX 연구자 입장에선 이 중요성을 깨닫고 과감하게 투자한 현대차의 결정이 부럽기도 하네요.

전자제품 대기업 소속 UX 리서처 B씨

한편으로는 조사 대상을 선별할 수 없다는 점에서 수집된 데이터의 활용도가 떨어지지 않을까 싶기도 한데요. 이 질문에 한 UX 리서처는 “UX 스튜디오 서울에서 진행되는 테스트를 보면 아이트래킹이나 음성 명령처럼 상대적으로 남녀노소 모두의 보편적인 경험을 다루고 있다”며 “모집단의 규모만 충분히 키워 편향을 줄인다면 충분히 연구에 활용할 수 있을 것”이라고 전했습니다. 

정리하면요. UX 스튜디오 서울은 강남 한복판에 설치된 ‘현대차의 눈과 귀’ 같은 공간입니다. 자동차라는 체험 가능한 실물 제품을 보유했다는 점, 강남 한복판에 사옥을 갖고 있다는 점, 타깃 사용자가 시민 전체라는 점에서 현대차만 취할 수 있는 영리한 UX 리서치 전략이라는 평가입니다. 다만 아직은 ‘시민이 연구에 직접 참여한다’는 느낌을 받지는 못했는데요. 현대차가 앞으로 UX 스튜디오를 어떻게 활용해나갈지 주목됩니다.

제작 장준영

출처디지털 인사이트(DIGITAL iNSIGHT)

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